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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운드 하락, 철의 여인 시대로

by jake82 2022. 10. 1.

영국 파운드화가 최근 역대 최저치의 달러 환율을 기록했다. 한때 1파운드당 1.035달러를 찍기도 했고, 조금 회복하면서 1.07달러 이하를 기록했다.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총리이던 1985년 당시의 수준으로 돌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마거릿 대처 철의 여인
영국 제71대 총리, 마거릿 대처. 철의 여인(The Iron Lady)

감세는 하되, 재정은 확대한다

영국은 지난주 금요일에 450억 파운드(약 483억 달러, 한화 약 69조 원), GDP의 1.2%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감세안을 내놓았다. 런던의 싱크탱크인 재정연구소(IFS, Institute for Fiscal Studies)에 의하면 1972년 이후 최대 규모의 감세안이다. 팬데믹 대응으로 과도한 재정 사용을 충당하기 위해 기존 정부가 계획했던 법인세 증세도 포기했고, 고액 소득자의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도 없앴으며, 소득세 기본 세율 구간도 깎고, 부동산 취득세도 낮추는 등 전방위적으로 세금을 깎는 것이다.

 

이번 정책은 신임 총리인 리즈 트러스(Liz Truss) 정부가 선거 기간 동안 공언한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 그리고 이어진 인플레이션의 영향에도 경제 성장을 이룰 방법을 찾았다면서 내놓은 것이 1980년대를 회상케 하는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그리고 자유 시장 경제 논리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평가다.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파운드 환율은 더 떨어졌고, 주식 시장과 채권 역시 크게 떨어졌다. 

 

장기적으로 트리클다운(Trickle-down) 효과를 노린 것으로도 생각되지만,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불확실하다. 급등한 에너지 가격에 대한 보조금까지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기로 해 세금은 깎지만 추가 재정을 더 마련해야 할 상황이기에 발표한 정책 방향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대부분 주요 미디어들은 안 그래도 안 좋은 상황에서 "영국이 투자자들을 도망가게 만들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등 일제히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리는 올리고 부동산은 부양

지난주 발표 이후부터 시장의 반응이 너무 좋지 않자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급한 불 끄기 식으로 지속적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 모순을 더하는 것이다. 금리가 계속 올라가면 기업과 가정들에 약속한 에너지 보조금 확대를 위한 추가 재정 등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겠다는 정책 방향과도 반대로 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감세 정책을 시행하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긴축 정책도 따라와야 하는데, 이런 계획이 아직 없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정부가 소위 '대처리즘(Thatcherism)'을 표방하지만, 대처리즘은 그래도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한 계획이 있었다는 점을 짚었다.

 

영국 자산에 대한 시장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의 계획을 상세하게 담은 '중기 재정 계획'을 내놓겠다고 국가 부채가 어떻게 관리될지에 대한 방법을 포함해 또 부랴부랴 발표한다. 안 그래도 시장에서는 기존 계획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모순되는 재정 계획에 이를 제대로 구체화할 방안도 없이 성장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하니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다. 

 

 

믿음이 안서는 영국 정부

영국 정부는 이번에 각종 경제 정책과 예산안을 검증하는 독립 기관인 영국의 예산책임청(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을 통해 새롭게 발표한 정책들을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재정 책임에 대한 검증을 받지 않은 발표에 불안감이 더 커졌다고 보고 있기도 했다. 

 

세금은 깎되, 재정 건전성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꺾이지 않은 상황에서 영란은행은 앞으로 예상보다 더 큰 폭의 금리 인상 발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감세안이 나오기 전에 기준 금리는 0.5% 포인트 올라 2.25%가 되었는데 다음 기준 금리 발표인 11월에는 최소 0.75% 포인트 인상을 고려할 것으로 바클레이스(Barclays)는 예상했다.

 

영국의 상황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영국의 경상수지적자는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었고 이런 해외 투자자들은 돈을 계속해서 빼고 있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상황에 이해되지 않는 정책이 불에 기름을 붓게 된 격이다.

 

이번 발표대로 영국이 인플레이션도 잡고, 시장을 부양시키며 더 큰 경제 성장도 하겠다는 목표를 이루려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진보적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인 시장을 안심시키고 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영국의 정책 방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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